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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소개

광동 지역을 흐르는 주강의 하구라는 위치 때문에 마카오가 '오문(澳門)' 또는 '무역의 관문'으로 알려졌을 당시, 마카오의 첫 번째 정착민은 복건성에서 온 어민과 광동성에서 온 농민들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항구도시가 로마로 가는 비단을 나르는 실크로드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중국이 세계 무역의 중심에서 멀어진 후에도 광동 지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활발한 해상무역을 통해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상인들은 1513년 중국 남부해안에 처음으로 들어와 무역을 시작한 조르쥬 알바레스의 뒤를 이어 정착한 포르투갈 상인들을 환영했습니다.

이로써 마카오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만남의 장소가 되어 왔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선교단을 보내 성 프란시스 자비에(일본에서 많은 선교 활동을 벌인 인물)의 뒤를 잇도록 했으며, 기독교 대학이 설립되어 마테오 리치와 같은 학생들이 신학을 전파하기 위해 준비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대학이 바로 오늘날의 성 바울 성당입니다. 그 밖에도 많은 교회와 요새들이 건축되어 오늘날에도 독특하게 느껴지는 유럽풍의 도시로 변모해 가게 됩니다.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의 전성기는 라이벌 국가인 영국과 네덜란드의 등장으로 서서히 쇠퇴해 가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은 포르투갈이 마카오에서 계속 무역을 하도록 허락했으며, 이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100년 이상 카사 정원을 임대하여 상점을 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대중국 무역이 성장함에 따라서 유럽 상인들은 광동에 머무르면서 교역 시즌에 중국 차와 귀중품을 사고 마카오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1841년 아편 전쟁 이후, 홍콩이 개항하자 많은 외국 상인들이 마카오를 떠나게 되면서 마카오는 조용하고 예스러운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카오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와 역사적인 건물들 때문에 많은 여행가와 작가, 그리고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서 발전하게 됩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마카오는 호텔, 리조트, 스포츠 시설, 레스토랑과 카지노 등의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섬유, 전자제품, 장난감 산업 등도 발전 시켜 왔습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마카오의 경제는 홍콩이나 광동 지역, 특히 아시아의 작은 호랑이로 불리는 주강 삼각주 지역의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카오는 금융 서비스, 운송과 통신 서비스 등을 제공합니다.

오늘날 마카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역으로, 홍콩과 마찬가지로, '1국가 2체제' 원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작은 크기의 특별행정구역은 매립지 건립을 통해 그 크기를 키워가고 있으며, 다양한 관광지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마카오는 동양과 서양의 조화라는 독특한 분위기를 더욱 발전 시켜 마카오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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